전체 글31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 조선의 외교 정책 1. 명과 후금 사이에서 흔들린 조선: 병자호란의 배경17세기 초반, 조선의 외교 정책은 명나라(明)와 후금(後金, 후일 청나라로 발전)의 대립 속에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숭상하는 사대(事大) 외교 정책을 고수하며 전통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하려 했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새로운 강대국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후금(後金,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이었다. 16세기 말부터 여진족 출신의 누르하치(努爾哈赤)가 만주 지역을 통합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후금을 세웠다.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은 명나라의 대군을 대파하며 중국 대륙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와의 전통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후금을 배척하는 입장을 취했다. 1623년 인조(仁祖)가 .. 2025. 3. 3.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순신과 의병의 유니버스 1. 임진왜란의 발발과 조선의 위기: 국가 존망의 갈림길1592년(선조 25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고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며, 이후 1597년 일본군이 다시 침공한 **정유재란(丁酉再亂)**까지 합쳐 7년간(1592~1598) 지속된 대규모 전쟁이었다. 일본군은 조총(鳥銃)을 앞세운 강력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조선을 빠르게 장악하였고, 수도 한양은 전쟁 발발 20일 만에 함락되었다. 전란 초기, 조선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당시 조선은 문치(文治) 중심의 정치 체제 속에서 군사 대비가 미비했으며, 변방 방어선도 허술했다. 일본군은 부산을 시작으로 북상하며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申砬)이.. 2025. 3. 2. 조선 전기의 사화 : 훈구와 사림의 문제 1. 조선 전기 훈구와 사림의 형성: 정치적 갈등의 시작조선 전기(15세기~16세기)는 새로운 유교 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된 시기였다. 특히 훈구(勳舊) 세력과 사림(士林) 세력의 대립은 조선 정치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로 작용했으며, 이는 결국 네 차례의 사화(士禍)라는 정치적 숙청 사건으로 이어졌다. 훈구 세력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이성계를 도와 왕조를 세운 공신 출신 관료들로, 중앙 정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도전, 조준, 하륜, 신숙주, 한명회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개국 이후에도 조선의 행정·군사·경제 정책을 주도했다. 이들은 현실적인 정치를 중시하며, 국왕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중앙집권적 체제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경.. 2025. 3. 1. 세종대왕과 집현전 : 훈민정음 창제와 학문 발전 1. 세종대왕의 즉위와 집현전의 설립: 학문 진흥을 위한 국가 체제 구축조선 제4대 국왕인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정치·경제·군사·과학·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훈민정음 창제와 집현전을 통한 학문 발전은 한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세종대왕이 즉위할 당시 조선은 아직 신생 왕조로서 국가 체제가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아버지 태종(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과격한 숙청을 단행하며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이는 한편으로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즉위한 세종은 보다 유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고, 왕도정치를 기반으로 한 문치주의 국가를 확.. 2025. 2. 28. 조선 건국의 과정과 정도전의 역할 1. 고려 말 혼란과 조선 건국의 배경: 새로운 국가의 필요성14세기 말 고려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외부 침략으로 인해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원 간섭기를 거치며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민왕의 개혁을 단행했으나, 기존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의 반발과 왕권 약화로 인해 개혁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또한, 고려 말에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이 계속되면서 국가의 방어 체제가 무너졌고, 백성들은 계속된 전쟁과 수탈에 시달리며 불만을 키워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떠오른 것이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었다.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부패한 권문세가를 비판하며 사회 개혁을 주장했고, 신흥 무인 세력은 왜구 토벌 과정에서 군사력을 축적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2025. 2. 27.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 1. 고려 말의 혼란과 홍건적·왜구 침략의 배경: 내부 분열과 외부 위협14세기 고려는 심각한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외부의 침략을 맞이해야 했다. 고려는 13세기 중반부터 약 100년간 원나라(몽골)의 간섭을 받으며 정치적 자주성을 잃었고, 원 간섭기 동안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권력을 독점하며 국가 재정을 악화시켰다. 특히,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즉위하면서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개혁을 추진했으나, 기존 기득권 세력인 권문세가들의 반발과 내분으로 개혁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고려 내부의 혼란을 틈타, 외부에서는 강력한 군사적 위협이 가해졌다. 특히,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가 고려를 침략하면서 나라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의 위기를 초래했다. 홍건적.. 2025. 2. 26.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