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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민주화 운동의 역사: 4.19 혁명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by snowflake-blog 2025. 3. 14.

1. 4·19 혁명: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출발점

1960년 4·19 혁명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출발점이 된 사건으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국민이 직접 나선 최초의 민주 혁명이었다.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장기 집권을 위해 반공주의를 내세워 정권을 강화하고,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대통령 연임 제한을 폐지하였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신익희가 급사하고, 조병옥도 병사하면서 이승만은 무난히 당선되었으나, 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장면이 승리하였다. 이에 이승만 정권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며 정권 유지에 나섰다.

 

3·15 부정선거는 경찰과 행정 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조작 선거였으며, 사전 투표 조작, 투표함 바꿔치기, 폭력 동원 등 각종 불법 행위가 자행되었다. 이에 경남 마산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고, 4월 11일 실종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다.

 

4월 19일,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고, 학생·시민들은 "독재 타도", "이승만 하야"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정부는 강경 진압을 시도하며 경찰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시위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4·19 혁명의 결과 대한민국은 제2공화국(장면 내각)이 출범하며 민주주의로 한 걸음 나아가는 듯했지만, 이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다시 후퇴하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 4.19 혁명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2. 유신 체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으로 대한민국은 군사 정권 시대에 접어들었다.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경제 성장에 집중하였으나,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 유신헌법을 도입하여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또한, 국회 해산권과 긴급조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며 사실상 독재 체제를 완성하였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커지던 중,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박정희가 암살되는 10·26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쿠데타(12·12 군사반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전두환 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신군부는 계엄군을 투입하여 강경 진압을 감행하였다. 광주 시민들은 무차별 학살과 탄압에 맞서 저항하였으며, 결국 10일간의 치열한 항쟁 끝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군사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처절한 저항이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당시 군부는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철저히 은폐하려 하였으나, 이후 진상 조사를 통해 국가 폭력에 의해 자행된 민주주의 탄압 사건으로 밝혀졌다.

광주의 희생은 이후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되었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6월 민주항쟁의 발발과 직선제 쟁취

전두환 정권은 1981년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고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언론 통제와 강력한 군사적 억압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정권은 위기에 봉착하였다.

 

1987년 1월,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며 민주화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경찰은 박종철을 불법 연행한 뒤 가혹한 고문을 가하였고, 이를 은폐하려 하였으나, 언론과 시민 단체의 노력으로 사건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6월 10일부터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시민과 학생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결국 6월 29일, 당시 여당 대표 노태우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였다. 이로 인해 1987년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치러지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6월 민주항쟁은 대한민국에서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1993년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4.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의의와 오늘날의 과제

4·19 혁명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은 국민들이 독재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였다.

  • 4·19 혁명(1960년): 최초의 민주 혁명, 독재 정권 타도
  •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군부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
  • 6월 민주항쟁(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 군사 정권 종식

이러한 민주화 운동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은 현재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남아 있다.

(1)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

  • 6월 민주항쟁 이후에도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은 지속되고 있으며,
  •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2) 과거사 청산과 진실 규명

  •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거의 희생과 투쟁 위에서 발전해 왔으며,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4·19 혁명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진 민주화 운동은 현재와 미래 세대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하는 교훈으로 남아야 한다.